디아틀로프 실종 사건: 왜 그들은 영하 30도에 맨발로 텐트를 찢고 나갔나?

세계 5대 미스터리 디아틀로프 실종 사건

1959년 2월 2일, 구소련(러시아)의 북부 우랄산맥. 원주민인 만시족 언어로 ‘죽음의 산’이라 불리는 ‘홀라트샤흘(Kholat Syakhl)’의 밤은 고요했다. 영하 30도를 밑도는 혹한과 칼바람만이 불던 그날 밤, 9명의 젊은 등산대원들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그들은 단순한 아마추어가 아니었다. 이 사건의 리더 이고르 디아틀로프를 포함한 대원들은 전원이 스키와 등산에 능숙한 베테랑들이었다. 하지만 그들이 돌아오기로 한 날짜가 지나도 무전은 울리지 않았고, 구조대가 현장에 도착했을 때 마주한 것은 인간의 이성으로는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기괴한 현장이었다.

60년이 넘은 지금까지도 ‘세계 5대 미스터리’ 중 하나로 손꼽히는 디아틀로프 실종 사건(Dyatlov Pass Incident). 도대체 그날 밤, 텐트 안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찢겨진 텐트와 맨발의 탈출

1959년 2월 26일, 수색대는 마침내 실종된 대원들의 텐트를 발견했다. 텐트는 눈에 반쯤 파묻혀 있었지만, 그 상태가 심상치 않았다.

가장 충격적인 사실은 “텐트가 안에서 밖으로 찢겨 있었다”는 점이다.

외부의 침입 흔적은 없었다. 곰이나 야생동물의 공격도 아니었다. 급박한 상황에서 누군가 칼을 들어 텐트 안쪽에서 천을 찢고 탈출구를 만든 것이었다. 텐트 입구는 멀쩡했지만, 그들은 입구를 두고 굳이 텐트를 찢어야 할 만큼 극도로 공포스러운 상황에 직면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더욱 기이한 것은 텐트 주변의 발자국이었다. 대부분의 발자국은 맨발이거나 양말 한 짝만 신고 있었다. 영하 30도의 눈밭을 신발도, 외투도 없이 뛰쳐나간 것이다. 발자국은 텐트에서 약 1.5km 떨어진 숲 쪽으로 향하다가 끊겨 있었다.

질서 정연하게 대피한 것이 아니라, 패닉 상태에서 허겁지겁 도망친 흔적. 베테랑 등산가들이 영하의 날씨에 신발을 신지 않고 나간다는 것은 곧 자살행위임을 알면서도, 그들은 텐트 안에 머무는 것을 죽음보다 더 두려워했다.




발견된 시신들: 이해할 수 없는 손상

최초 발견된 시신은 숲 가장자리의 거대한 삼나무 아래에 있었다. 두 명의 대원(유리 도로셴코, 유리 크리보니셴코)은 속옷 차림이었고, 불을 피우려 했던 흔적이 남아 있었다. 그들은 동사(저체온증)한 것으로 보였다.

곧이어 리더인 디아틀로프를 포함한 3명의 시신이 텐트와 삼나무 사이에서 발견됐다. 그들의 자세는 마치 텐트로 다시 돌아가려다 힘이 빠져 죽은 듯한 모습이었다. 여기까지는 ‘저체온증으로 인한 비극’으로 결론지을 수 있을 듯했다.

하지만, 진짜 공포는 두 달 뒤 눈이 녹으면서 발견된 나머지 4명의 시신에서 시작됐다.

숲 깊은 곳, 계곡 아래에서 발견된 4명의 시신 상태는 참혹했다.

물리적 외상으로는 니콜라이 티보-브리뇰의 두개골은 심하게 함몰되어 있었고, 류드밀라 두비니나와 세묜 졸로타료프의 갈비뼈는 으스러져 있었다. 부검의는 이 상처를 “시속 80km로 달리는 차에 치였을 때나 생길 수 있는 충격”이라고 묘사했다.

그런데 특이한 건 외부 상처가 없다는 것이다. 뼈가 으스러질 정도의 충격이었지만, 피부 겉에는 타박상이나 멍이 전혀 없었다. 마치 거대한 압력이 내부만을 파괴한 듯했다.

게다가 사라진 신체부위도 있었는데.. 두비니나의 시신에서는 혀와 안구가 사라져 있었고, 입술도 제거된 상태였다. (이는 부패 과정에서 작은 동물들에 의한 것일 수도 있으나, 미스터리를 증폭시키는 요소가 되었다.)

풀리지 않는 의문점: 방사능과 오렌지색 피부

단순한 조난 사고로 치부하기엔 설명되지 않는 증거들이 쏟아져 나왔다.

  1. 방사능 검출
  2. 오렌지색 피부
  3. 미스터리한 사진
  4. 또 다른 목격자

먼저 방사능이 검출되었다. 일부 대원들의 옷에서 기준치를 훨씬 초과하는 방사능이 검출되었다. 산속 깊은 곳에서 왜 방사능이 나왔을까?

두번째로는 피부색이 오렌지 색이었다. 장례식에 참석한 유족들은 시신들의 피부가 기이할 정도로 검붉은 오렌지색을 띠고 있었으며, 머리카락이 하얗게 세어 있었다고 증언했다.

마지막으로는 미스터리한 사진이 남아있었다. 그들이 남긴 카메라의 마지막 컷에는 어둠 속에서 빛나는 정체불명의 구체가 흐릿하게 찍혀 있었다.

그리고 사건 발생 당일 밤, 인근 지역에 있던 다른 등산 팀은 “북쪽 밤하늘에서 주황색 비행 물체를 보았다”고 진술했다.

소련 당국은 서둘러 수사를 종결했다. 최종 결론은 황당하게도 “알 수 없는 불가항력적 힘(Unknown Compelling Force)에 의한 사망”이었다. 사건 기록은 기밀로 분류되어 수십 년간 봉인되었다.




수십 년간 이어진 가설들

이 기묘한 사건을 두고 수많은 가설이 제기되었다. 그 중에 대표적으로 4가지의 이야기가 들려온다.

  1. 눈사태
  2. 카르만 소용돌이(인초음파)
  3. 비밀 군사 무기 실험
  4. 원주민의 공격

가장 현실적인 가설은 눈사태이다. 대원들이 잠든 사이 눈사태가 텐트를 덮쳤고, 그 충격으로 갈비뼈가 부러졌으며, 급히 탈출하느라 맨발이었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텐트 주변 지형은 눈사태가 일어나기엔 너무 완만했고, 눈사태 흔적도 발견되지 않았다.)

두번째는 인초음파설인데, 바람이 산봉우리에 부딪히며 인간의 귀에는 들리지 않는 초저주파(인초음파)를 발생시켰다는 설이다. 이는 인간에게 극심한 공포, 메스꺼움, 환각을 일으킬 수 있다. 대원들이 패닉에 빠져 텐트를 찢고 나갔다는 설명이 가능하다.

군사 무기에 대한 이야기도 있다. 방사능 검출과 주황색 비행 물체 목격담을 근거로 한다. 소련군이 비밀 미사일이나 신무기를 실험하다 오작동하여 등산팀이 피해를 입었고, 군이 이를 은폐하기 위해 시신을 훼손하거나 현장을 조작했다는 음모론이다.

마지막으로 성지를 침범한 대원들을 원주민이 살해했다는 설이지만, 현장에는 대원들의 발자국 외에 다른 발자국이 전혀 없었다.

결론: 진실은 눈 속에 묻혔는가?

2020년, 러시아 검찰은 61년 만에 재수사 결과를 발표했다. 그들의 결론은 ‘눈사태(Slab Avalanche)’였다.

거대한 눈덩이가 굴러온 것이 아니라, 눈 층 자체가 널판지처럼 미끄러져 내려와 텐트를 덮쳤다는 것이다. 이로 인해 내부 장기 손상을 입었고, 시야 확보가 안 되는 눈보라 속에서 텐트로 돌아오지 못해 동사했다는 설명이다.

과학적으로는 가장 타당한 결론이다. 하지만 여전히 많은 미스터리 마니아들은 의문을 제기한다. 눈사태가 덮쳤는데 어떻게 텐트 지지대는 멀쩡히 서 있었을까? 옷에서 발견된 방사능은 무엇인가? 그리고 혀와 눈이 사라진 시신에 대한 설명은 충분한가?

어쩌면 우리는 영원히 1959년 2월 2일 밤의 진실을 알 수 없을지도 모른다. 확실한 것은 단 하나, 9명의 젊은이들이 그 차가운 설산에서 겪었을 공포는 우리가 상상하는 그 어떤 것보다 끔찍했을 것이라는 점이다.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과연 자연재해였을까, 아니면 인간이 보지 말아야 할 무언가를 목격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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