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어노크 식민지 실종 사건: 사라진 115명과 단어 ‘CROATOAN’
로어노크 식민지 실종 사건
1587년, 영국의 존 화이트(John White)는 115명의 이민자를 이끌고 아메리카 대륙의 로어노크 섬(현재 노스캐롤라이나주)에 도착했다. 그곳에는 그의 딸과 사위, 그리고 갓 태어난 손녀 ‘버지니아 데어’도 있었다. (버지니아 데어는 미국 땅에서 태어난 최초의 영국인 아기였다.)
정착 초기, 물자가 부족해지자 존 화이트는 지원 요청을 위해 영국으로 잠시 돌아갔다. “금방 다녀오겠다”는 약속을 남기고.
하지만 운명의 장난처럼 스페인과의 전쟁이 터지면서 발이 묶였고, 그가 다시 로어노크 섬으로 돌아온 것은 무려 3년이 지난 1590년이었다.
손녀를 안아볼 생각에 부풀어 섬에 내린 존 화이트. 하지만 마을은 쥐 죽은 듯 조용했다. 사람들의 환호성도, 아기 울음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그가 목격한 것은 잡초가 무성한 텅 빈 마을뿐이었다. 115명의 주민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 있었다.

남겨진 단 하나의 단서: CROATOAN
마을의 상태는 기이했다.
- 전투 흔적 없음: 싸우거나 학살당한 흔적은 없었다. 시신도, 핏자국도 없었다.
- 질서 정연한 철수: 집들은 무너진 것이 아니라, 마치 이사라도 간 듯 얌전히 해체되어 있었다.
- 구조 신호의 부재: 존 화이트는 떠나기 전 “만약 위급 상황이 생겨 떠나게 되면 나무에 ‘십자가(†)’ 표시를 새겨라”라고 당부했었다. 하지만 십자가 표시는 어디에도 없었다.
유일한 단서는 마을 입구의 거대한 나무 기둥에 새겨진 알 수 없는 단어 하나였다.
“CROATOAN” (크로아토안)
그리고 근처의 다른 나무에는 “CRO”라는 세 글자만 급하게 새기다 만 흔적이 있었다. 이 단어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들은 이 단어를 남기고 어디로 간 것일까?
크로아토안은 무엇인가? (가설들)
‘크로아토안’은 당시 인근 섬(해터라스 섬)에 살던 원주민 부족의 이름이자 지명이었다.
가설 1: 원주민과의 동화 (이주설) 가장 유력한 가설이다.
식량이 떨어진 주민들이 우호적인 크로아토안 부족에게 의탁하기 위해 그들의 섬으로 이주했다는 것이다. 십자가(위급 신호)가 없었다는 점이 이를 뒷받침한다. 하지만 그렇다면 왜 존 화이트가 돌아왔을 때 아무도 마중 나오지 않았을까?
가설 2: 스페인군 혹은 타 부족의 학살
당시 적대국이었던 스페인 군대가 그들을 납치해 죽였거나, 적대적인 원주민(포우하탄 부족)에게 몰살당했다는 설이다. 실제로 훗날 포우하탄 추장이 “우리가 그들을 죽였다”고 주장했다는 기록이 있으나 증거(시신, 유물)는 발견되지 않았다.
가설 3: 전염병 혹은 좀비 바이러스(음모론)
미드 <슈퍼내추럴>이나 <아메리칸 호러 스토리> 등에서는 이를 악령이나 전염병에 의한 몰살로 묘사한다. “크로아토안”이 악령의 이름이라는 도시괴담도 여기서 파생되었다.
데어 스톤(Dare Stone): 조작인가 진실인가?
사건 발생 350년 뒤인 1937년, 늪지대에서 이상한 돌 하나가 발견되었다. 돌에는 존 화이트의 딸, 엘리너 데어가 새긴 것으로 추정되는 메시지가 적혀 있었다.
“아버지가 떠나고 얼마 안 있어 사위와 아이가 죽었습니다. 남은 우리는 고통 속에…”
이 돌을 시작으로 40개가 넘는 돌이 발견되었지만, 조사 결과 첫 번째 돌을 제외한 나머지는 모두 위조품(사기극)으로 판명 났다. 하지만 첫 번째 돌만큼은 진품일 가능성이 있다는 주장이 여전히 제기되고 있다. 만약 진짜라면, 그들은 질병과 원주민의 공격 속에 비참하게 죽어간 것이다.
현대 과학이 밝혀낸 진실: 파란 눈의 원주민?
최근 DNA 검사가 이 미스터리의 실마리를 풀고 있다. 로어노크 섬 인근에 사는 원주민 후손들의 DNA를 분석한 결과, 놀랍게도 유럽인의 유전자가 다수 섞여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심지어 과거 기록에 따르면, 이 지역 원주민 중에는 특이하게도 “회색 눈이나 파란 눈을 가진 아이들”이 있었고, 그들은 영어를 섞어 썼으며 조상이 “책을 읽을 줄 알았다”고 전해진다.
결국 그들은 ‘증발’한 것이 아니라, 살아남기 위해 원주민 사회로 스며들어 그들의 일부가 된 것일지 모른다. 영국인이기를 포기하고, 생존을 선택한 것이다.
결론: 숲은 알고 있다
존 화이트는 끝내 딸과 손녀를 찾지 못하고 영국으로 돌아가 쓸쓸히 죽었다. 미국의 교과서에 나오는 이 ‘잃어버린 식민지(The Lost Colony)’ 이야기는, 미지의 대륙에 첫발을 디딘 이방인들이 겪어야 했던 절대 고독과 공포를 상징한다.
나무에 새겨진 “CROATOAN”. 그것은 목적지를 알리는 이정표였을까, 아니면 최후를 맞이한 그들이 남긴 마지막 비명이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