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대왕 며느리들의 스캔들 이야기 (조선왕조실록 기록?)

세종대왕 며느리들의 스캔들, 조선왕조실록 세종실록에 기록된 이야기




세종대왕 성군(聖君)의 유일한 오점?

대한민국 국민이 가장 존경하는 인물 1위, 세종대왕. 한글 창제, 과학 발전, 영토 확장까지. 그는 완벽한 왕이었다. 하지만 그에게도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것이 딱 하나 있었으니, 바로 ‘자식 농사’, 그중에서도 ‘며느리 복’이었다.

세종의 장남이자 훗날 문종이 되는 왕세자 ‘이향’. 그는 당대 최고의 미남에 천재였지만, 여자 복이 지독하게 없었다. 세종대왕은 아들을 위해 최고의 며느리들을 직접 골라주었지만, 그녀들은 조선 역사상 전무후무한 ‘엽기적인 스캔들’을 일으키며 궁궐을 발칵 뒤집어 놓았다.

압슬(고문)보다 더 고통스러웠을 세종대왕의 며느리 리스트. 뱀 가루를 먹은 첫째와 여자를 사랑한 둘째의 이야기를 공개한다.

첫 번째 세자빈 ‘휘빈 김씨’: 남편을 얻기 위해 뱀을 먹다

첫 번째 며느리, 휘빈 김씨는 명문가 출신이었지만 치명적인 문제가 있었다. 남편인 세자가 그녀를 거들떠보지도 않는다는 것이었다. (당시 세자는 공부벌레였거나, 김씨가 취향이 아니었던 것으로 보인다.)

독수공방에 지친 김씨는 질투심에 눈이 멀어 금기시된 주술(흑마법)에 손을 대기 시작했다.

“사랑을 훔치는 신발”

그녀는 세자가 좋아하는 궁녀(효동)의 신발을 훔쳐다가 불에 태워 가루로 만든 뒤, 술에 타서 세자에게 먹이려 했다.

“교미하는 뱀”

무녀에게 “교미하다 죽은 뱀을 가루로 만들어 먹으면 사랑을 받는다”는 말을 듣고, 뱀 가루를 허리춤에 차고 다니거나 음식에 섞으려 시도했다.

결국 이 기이한 주술 행각은 시아버지 세종의 귀에 들어갔다. 격노한 세종은 “며느리가 요사스러운 술법을 쓴다”며 그녀를 폐출시켰다. 이것이 비극의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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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세자빈 ‘순빈 봉씨’: 조선판 레즈비언 스캔들

첫째 며느리를 쫓아낸 세종은 “이번에는 좀 활달하고 성격 좋은 아이를 뽑자”며 심사숙고 끝에 ‘순빈 봉씨’를 두 번째 며느리로 맞이했다.

하지만 그녀는 활달해도 너무 활달했다.

그녀는 술을 매우 좋아해서 대낮부터 술에 취해 주사를 부렸고, 시녀들을 상습적으로 폭행했다.

관음증도 있어 벽 틈으로 남편(세자)이 다른 후궁과 잠자리하는 것을 훔쳐보며 소란을 피웠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따로 있었다. 남편에게 사랑받지 못한 그녀가 눈을 돌린 대상은 남자가 아닌 ‘여자’였다.

그녀의 파트너는 자신의 시종인 궁녀 ‘소쌍’이었다. 실록(세종 18년 10월 26일)에 기록된 내용은 현대의 막장 드라마보다 더 적나라하다.

“봉씨가 소쌍을 매우 사랑하여 잠시도 곁을 떠나지 못하게 했다. (…) 밤에 잘 때 소쌍으로 하여금 이불 속으로 들어오게 하여 서로 껴안고 잤다.”

소문이 파다하자 세종은 소쌍을 불러 심문했다. 소쌍의 진술은 충격적이었다. “빈께서 저에게 남자가 여자와 교합하는 형상을 흉내 내셨습니다.”

조선 왕실 한복판에서 벌어진 전대미문의 동성애 스캔들. 유교 국가의 왕인 세종에게 이는 천지가 개벽할 일이었다. 게다가 봉씨는 거짓 임신 소동(상상 임신 혹은 거짓말)까지 벌이며 세종을 기만하려 했다.

결국 세종은 피눈물을 머금고 두 번째 며느리마저 폐출시켰다.




세 번째 세자빈, 그리고 비극의 씨앗

지칠 대로 지친 세종과 세자. 세 번째로 맞이한 세자빈(현덕왕후 권씨)은 다행히 성품이 온화했고, 훗날 단종이 되는 아들도 낳았다. 하지만 그녀는 출산 직후 산욕열로 사망하고 만다.

이 ‘며느리들의 저주’는 조선 역사에 거대한 나비효과를 불러왔다.

세자(문종)는 여자에 대한 정이 완전히 떨어져, 왕비 자리를 비워둔 채 홀로 지냈다.

문종이 일찍 죽었을 때, 어린 단종을 지켜줄 ‘어머니(대비)’가 없었다.

왕실의 어른이 없으니, 야심 많은 삼촌 수양대군(세조)이 쿠데타(계유정난)를 일으켜 조카를 죽이고 왕위를 찬탈하는 비극이 벌어졌다.

만약 첫 번째나 두 번째 며느리가 쫓겨나지 않고 자리를 지켰다면, 수양대군은 감히 반란을 꿈꾸지 못했을 것이고 조선의 역사는 완전히 바뀌었을 것이다.

결론: 가장 완벽한 왕의 가장 인간적인 고민

우리는 세종대왕을 ‘한글을 만든 천재’로만 기억한다. 하지만 실록 속의 그는 며느리가 뱀 가루를 먹고, 동성애를 하는 꼴을 보며 “집안 꼴이 말이 아니구나”라고 한탄했던 평범하고 불행한 시아버지였다.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지만, 그 이면에는 인간의 적나라한 욕망과 실수가 숨겨져 있다. 오늘 밤, 넷플릭스보다 더 자극적인 조선왕조실록의 한 페이지를 열어보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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