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현세자 독살설, 조선왕조실록 세자의 죽음

소현세자 독살설, 조선왕조실록에 기록되어 있는 세자의 죽음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영화 올빼미의 모티브가 되었던 이야기, 시작해 보겠씁니다.




소현세자 독살설, 조선이 놓친 가장 거대한 희망

만약 그가 왕이 되었다면, 조선은 일본보다 200년 앞서 근대화를 이뤘을지도 모른다. 병자호란의 패배로 청나라에 볼모로 끌려갔던 비운의 왕세자, 소현세자.

그는 8년 만에 고국으로 돌아왔다. 빈손이 아니었다. 그의 손에는 서양의 과학 기술, 천문학, 천주교 서적, 그리고 ‘새로운 조선’에 대한 꿈이 들려 있었다.

하지만 귀국한 지 불과 두 달 만인 1645년 4월 26일. 건강하던 34세의 소현세자는 갑작스러운 죽음을 맞이한다.

공식적인 사인은 학질(말라리아)이었다. 하지만 실록에 적힌 그의 시신 상태는 말라리아로 죽은 사람의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명백한 ‘맹독 중독’의 증상이었다.

범인은 누구였을까? 모든 화살표는 단 한 사람, 그의 아버지 인조를 가리키고 있다.

왕의 질투: 소현세자 죽음의 이유?

청나라 심양에 볼모로 잡혀간 소현세자는 그곳에서 외교관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청나라 황제는 조선의 왕 인조보다 세자 소현을 더 신뢰하고 아꼈다. 심지어 소현세자는 서양 선교사 아담 샬과 교류하며 지동설과 서양 문물을 받아들였다.

8년 뒤, 금의환향한 아들을 본 인조의 반응은 차가웠다. “수고했다”는 말 대신 박대와 의심이 쏟아졌다.

인조는 삼전도의 굴욕(청나라에 무릎 꿇음)을 당한 트라우마가 있었다. 그는 청나라가 자신을 폐위시키고 똑똑한 아들 소현을 왕으로 세울까 봐 극심한 공포와 질투에 시달렸다.

야사에 따르면, 소현세자가 청나라에서 가져온 벼루(용연석)를 자랑하자, 인조가 분노하여 벼루를 집어 던져 세자의 머리에서 피가 났다는 이야기까지 전해진다. 아버지에게 아들은 더 이상 자식이 아니라, 자신의 왕위를 위협하는 ‘정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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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현세자 의문의 죽음, 조선왕조실록

귀국 두 달 뒤, 세자가 시름시름 앓기 시작했다. 인조는 왕실 주치의(내의원)가 아닌, 자신이 데리고 있던 의관 ‘이형익’에게 침을 놓게 했다. 이형익은 침술로 유명했지만, 소문이 좋지 않은 인물이었다.

침을 맞은 지 3일 만에 소현세자는 급사했다. <인조실록> 46권(1645년 6월 27일)에 기록된 시신의 모습은 독살설을 강력하게 뒷받침한다.

“세자의 온몸이 전부 검은빛이었고, 이목구비의 일곱 구멍(눈, 코, 입, 귀)에서는 모두 붉은 피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 마치 약물에 중독되어 죽은 사람과 같았다.”

학질(말라리아)로 죽은 시신이 까맣게 변하고 구멍에서 피를 쏟는 경우는 없다. 이는 비소나 수은 같은 맹독에 당했을 때 나타나는 전형적인 반응이다.




죽음 이후, 며느리와 손자까지 죽이다

아들이 죽었다면 슬퍼해야 정상이다. 하지만 인조의 행동은 엽기적이었다. 그런 행동에는 크게 4가지가 있는데 다음과 같다.

  1. 장례 축소: 왕세자의 장례를 일반 사대부의 장례보다 못하게 치르도록 명했다.
  2. 부검 거부: 신하들이 독살을 의심하며 조사를 요청했지만, 인조는 화를 내며 묵살하고 서둘러 입관시켰다.
  3. 며느리 처형: 소현세자의 부인인 강빈(민회빈 강씨)이 억울함을 호소하자, 인조는 그녀가 자신의 수라상에 독을 탔다는 누명을 씌워 사약을 내려 죽였다.
  4. 손자 유배: 소현세자의 어린 세 아들(자신의 친손자들)을 제주도로 유배 보냈고, 그중 두 명은 의문의 죽음을 맞거나 풍토병으로 사망했다.

인조는 아들의 집안을 문자 그대로 ‘멸문지화(가문을 없애버림)’ 시켰다. 아들을 죽인 증거를 없애고, 자신의 왕권을 지키기 위한 비정한 아버지의 선택이었을까?

마무리 : 만약 살았다면?

소현세자의 죽음은 조선 역사상 가장 통탄스러운 순간으로 꼽힌다. 그는 꽉 막힌 성리학의 나라 조선에 서양의 과학과 천문학, 그리고 실용주의를 심으려 했다.

만약 그가 왕이 되었다면? 조선은 17세기에 이미 개항을 하고 근대 국가로 나아갔을지 모른다. 일제강점기 같은 치욕의 역사도 없었을 수 있다.

하지만 역사는 인조의 손을 들어주었고, 조선은 그 후로 200년 넘게 문을 걸어 잠그고 쇄국 정책을 고집하다가 멸망의 길을 걸었다.

소현세자의 검게 변한 시신. 그것은 죽어버린 아들의 육체이자, 동시에 죽어버린 조선의 미래였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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