힌터카이펙 농장 살인사건, 살인마는 우리와 함께 살았다
힌터카이펙 농장 사건의 시작, 눈 내리는 고립된 농장
1922년 3월, 독일 바이에른주의 한적한 시골 마을 카이펙(Kaifeck). 마을에서도 숲길을 따라 한참을 더 들어가야 나오는 외딴 농장 ‘힌터카이펙(Hinterkaifeck)’에는 그루버(Gruber) 일가 6명이 살고 있었다.
3월 31일 금요일 밤, 이 농장에 칠흑 같은 어둠과 함께 죽음이 찾아왔다.
며칠 뒤, 우편 배달부는 우편물이 수거되지 않고 쌓여 있는 것을 이상하게 여겼다. 4월 4일, 마을 주민들이 농장을 방문했을 때, 그들은 헛간 문을 열자마자 비명을 지르며 주저앉고 말았다.
가족 4명의 시신이 짚더미 위에 차곡차곡 쌓여 있었고, 집 안에서는 하녀와 2살 배기 아기가 침대에서 처참하게 살해된 채 발견되었다.
하지만 이 사건의 진짜 공포는 시신 발견 그 자체가 아니었다. 경찰 조사 결과, 범인이 살인을 저지른 후에도 며칠 동안 이 집을 떠나지 않고 시신들과 함께 생활했다는 사실이 밝혀졌기 때문이다.

사건 전의 기묘한 징조들
비극이 일어나기 며칠 전부터, 가장인 안드레아스 그루버(63세)는 이웃들에게 이상한 이야기를 했다. 그 이야기는 5가지이고 하나 같이 전부 수상했다.
- “눈 위의 발자국”: 숲에서 농장으로 이어지는 낯선 발자국을 발견했다. 하지만 집으로 들어온 발자국만 있고, 밖으로 나간 발자국은 없었다.
- “다락방의 소리”: 한밤중에 다락방에서 누군가 걷는 듯한 쿵쿵거리는 발소리가 들렸다.
- “사라진 열쇠와 낯선 신문”: 집 열쇠가 감쪽같이 사라졌고, 거실에서는 본 적 없는 뮌헨 지역 신문이 발견됐다.
- “도망친 하녀”: 사건 발생 6개월 전, 이전 하녀는 “이 집은 귀신 들렸다”며 공포에 질려 도망치듯 그만두었다.
- 새로운 하녀 ‘마리아’가 온 것은 운명의 장난처럼 사건 당일인 3월 31일이었다. 그녀는 농장에 도착한 지 몇 시간 만에 영문도 모른 채 죽임을 당했다.
잔혹한 그날 밤의 재구성
경찰의 현장 검증을 토대로 재구성한 그날 밤의 상황은 이러하다.
범인은 늦은 밤, 헛간에서 소란을 피워 가족들을 하나씩 밖으로 유인해냈다. 가장인 안드레아스, 부인 체질리아, 딸 빅토리아, 손녀 체질리아(7세). 이 4명은 헛간으로 나갔다가 차례대로 ‘곡괭이(Mattock)’로 머리를 가격 당해 살해되었다.
범인은 시신을 차곡차곡 쌓아 짚으로 덮은 뒤, 집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첫 출근을 하고 방에서 자고 있던 하녀 마리아와, 요람에 있던 2살짜리 아기 요제프까지 잔인하게 살해했다.
가장 끔찍한 점은 7살짜리 손녀 체질리아의 시신 상태였다. 부검 결과, 그녀는 할머니와 엄마가 살해당하는 것을 목격한 뒤 몇 시간 동안 살아있었다. 공포에 질린 아이는 자신의 머리카락을 한 줌씩 쥐어뜯으며 고통 속에서 서서히 죽어갔다.
범인은 시신 곁에서 무엇을 했나?
이 사건이 단순 강도 살인이 아닌 이유는 바로 ‘범인의 체류’ 때문이다.
가족들이 모두 죽은 뒤, 범인은 도망치지 않았다. 그 이유로는 3가지가 있는데 다음과 같다.
- 식사: 부엌에는 누군가 최근에 빵과 고기를 먹은 흔적이 있었다.
- 가축 관리: 며칠 동안 소와 닭에게 먹이를 챙겨주었다. (발견 당시 가축들은 굶어 죽지 않고 건강했다.)
- 난방: 주말 내내 굴뚝에서 연기가 피어오르는 것을 이웃들이 목격했다.
범인은 금요일 밤에 살인을 저지르고, 토요일, 일요일, 어쩌면 시신이 발견되기 직전인 월요일까지 그 집에서 먹고 자며 동물을 돌봤다. 헛간에는 시신이 쌓여 있고, 방에는 아기 시신이 있는 그 집에서 말이다. 그는 도대체 누구이며, 왜 그곳에 머물렀을까?
용의자들: 근친상간과 치정?
수많은 용의자가 지목되었지만, 결정적인 증거는 없었다.
로렌츠 슈리텐바우어 (이웃 남자)는 가장 유력한 용의자다. 그는 죽은 딸 빅토리아와 연인 관계였으며, 2살 배기 아기 요제프의 친부가 자신이라고 주장하며 양육비 문제로 갈등을 빚었다. 시신을 최초 발견할 때 시신의 위치를 너무 잘 알고 있었고, 시신을 보고도 놀라지 않았다는 증언이 있었다.
죽은 가장인 안드레아스 역시 평판이 최악이었다. 그는 친딸인 빅토리아와 근친상간 관계라는 소문이 파다했고, 실제로 그 죄로 감옥에 다녀오기도 했다. 이웃들은 아기 요제프가 안드레아스와 딸 빅토리아 사이에서 낳은 아이일 것이라고 수군댔다.
어쩌면 범인은 이 복잡하고 더러운 가족사(근친상간, 치정)에 분노한 누군가가 아니었을까? 그래서 집 안에 있는 돈에는 손도 대지 않고, 오직 가족의 ‘몰살’만을 목표로 했던 것은 아닐까.
에필로그: 머리 없는 유골
사건은 미제로 남았다. 1년 뒤 이웃들은 “불길하다”며 힌터카이펙 농장을 완전히 철거했다.
수사 과정에서 경찰은 영매(심령술사)에게 단서를 얻겠다며 피해자 6명의 머리(두개골)를 잘라 뮌헨으로 보냈다. 하지만 영매는 아무런 단서도 찾지 못했고, 설상가상으로 2차 대전 중 보관되어 있던 두개골마저 분실되었다.
결국 피해자들은 머리가 없는 상태로 묘지에 묻혀야 했다.
100년이 지난 지금도 독일 경찰학교에서는 이 사건을 ‘미제 사건 수사 자료’로 활용한다. 하지만 범인이 누구였는지, 왜 시신 곁에서 며칠을 보냈는지는 영원히 눈 속에 파묻혀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