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텔 미스터리, 엘리사 램은 왜 물탱크에서 발견되었나?

호텔 미스터리 엘리사 램 사건의 시작, 검은 물과 이상한 맛

2013년 2월, 미국 로스앤젤레스(LA)의 악명 높은 우범 지대인 스키드로(Skid Row). 그곳에 위치한 ‘세실 호텔(Cecil Hotel)’의 투숙객들이 프런트에 항의 전화를 걸기 시작했다.

“수압이 너무 약해요.” “샤워기에서 검은 물이 나와요.” “물에서 이상하고 역겨운 맛이 나요.”

호텔 측은 낡은 배관 문제라고 생각했다. 2월 19일 오전, 시설 관리 직원은 원인을 파악하기 위해 옥상에 있는 대형 물탱크로 올라갔다.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 굳게 닫힌 물탱크 뚜껑을 열어젖힌 직원은 그 안을 들여다보고는 비명을 질렀다.

물탱크 안에는 벌거벗은 젊은 여성의 시신이 부패해 퉁퉁 불은 채 둥둥 떠다니고 있었다. 투숙객들이 지난 며칠간 양치하고, 샤워하고, 마셨던 물은 바로 이 시신이 담겨 썩어가던 물이었다.

그녀의 이름은 엘리사 램(Elisa Lam). 21세의 캐나다 대학생이었다. 그녀는 도대체 왜, 호텔 옥상의 물탱크 안에서 죽음을 맞이한 것일까?

전 세계를 공포에 몰아넣은 4분의 영상

시신 발견 며칠 전, LA 경찰(LAPD)은 실종된 엘리사 램을 찾기 위해 그녀가 마지막으로 목격된 호텔 엘리베이터 CCTV 영상을 공개했다. 그리고 이 영상은 전 세계 인터넷 커뮤니티를 발칵 뒤집어 놓았다.

영상 속 그녀의 행동은 상식적으로 설명이 불가능했다.

  1. 엘리베이터 버튼 난타: 엘리베이터에 탄 그녀는 구석에 붙어 여러 층의 버튼을 마구잡이로 눌렀다. 하지만 문은 닫히지 않았다.
  2. 보이지 않는 존재와의 대화: 그녀는 문밖을 조심스럽게 내다보더니, 황급히 안으로 들어와 구석에 숨었다. 마치 누군가에게 쫓기는 듯했다.
  3. 기괴한 손짓: 다시 밖으로 나간 그녀는 허공을 향해 팔을 휘젓고, 손가락을 꺾으며 대화를 나누는 듯한 기이한 제스처를 취했다. (이 모습은 마치 춤을 추거나 접신을 하는 것처럼 보였다.)
  4. 사라짐: 그녀가 엘리베이터 밖으로 걸어 나가 사라지자마자, 거짓말처럼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고 정상 작동했다.

이 영상은 그녀가 살해당하기 직전의 모습인가, 아니면 초자연적인 현상에 휘말린 것인가? 네티즌들은 영상을 초 단위로 분석하며 ‘보이지 않는 살인마’의 흔적을 찾으려 애썼다.

또 다른 미스터리, 디아틀로프 실종 사건

세실 호텔: 저주받은 장소의 역사

사건을 더욱 미스터리하게 만든 것은 ‘세실 호텔’이라는 장소 그 자체였다. 1927년에 지어진 이 호텔은 화려한 외관과 달리 ‘죽음의 호텔(Hotel Death)’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었다.

그 이유로는 여러가지가 있는데 대표적으로 아래와 같은 일들이 있었다.

연쇄살인마의 은신처: 1980년대 LA를 공포에 떨게 했던 연쇄살인마 ‘나이트 스토커’ 리처드 라미레스가 범행 기간 동안 이 호텔 14층에 장기 투숙했다. 그는 피 묻은 옷을 입고 로비로 들어와도 아무런 제재를 받지 않았다.

잭 운터베거: 오스트리아의 연쇄살인마 잭 운터베거 역시 이 호텔에 머물며 매춘부들을 살해했다. 그는 리처드 라미레스를 동경해 이곳을 선택했다고 한다.

블랙 달리아 사건: 미국 역사상 가장 잔혹한 미제 사건인 ‘블랙 달리아 사건’의 피해자 엘리자베스 쇼트가 실종 직전 마지막으로 목격된 곳 중 하나가 세실 호텔 바였다.

수많은 자살: 호텔 개장 이후 수많은 투숙객들이 창문에서 뛰어내리거나 방 안에서 독약을 먹고 자살했다. 1962년에는 투신한 여성이 지나가던 행인 위로 떨어져 둘 다 사망하는 사건도 있었다.

이러한 음산한 역사 때문에 사람들은 엘리사 램 역시 “호텔에 씌인 악령에게 당했다”는 괴담을 믿기 시작했다.




미스터리: 그녀는 어떻게 물탱크에 들어갔나?

괴담을 배제하고 현실적인 관점에서 수사해도 의문점은 남았다. 가장 큰 미스터리는 “어떻게 물탱크 안으로 들어갔는가”였다.

왜냐면 물탱크 안으로 들어가기는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먼저 옥상 문은 잠겨져 있었다. 강제로 열면 경보음이 울리게 설계되어 있었다. 하지만 그날 밤 경보음은 울리지 않았다. (직원만이 알 수 있는 비밀 통로가 있었거나, 직원의 소행이라는 의심이 드는 대목이다.)

물탱크도 현실적으로 들어가기 쉽지가 않았다. 물탱크 높이는 약 3미터였다. 사다리 없이는 올라가기 힘들다. 더구나 물탱크 뚜껑은 무거운 철제로 되어 있어, 가냘픈 여성이 혼자서 뚜껑을 열고 안으로 뛰어든 뒤, 다시 안에서 뚜껑을 닫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발견 당시 뚜껑은 닫혀 있었다는 초기 보도가 있었으나, 나중에 경찰은 뚜껑이 열려 있었다고 말을 바꿨다. 이 점이 음모론을 키웠다.)

마지막으로 그녀의 옷은 물탱크 안에서 벗겨진 채 물에 떠다니고 있었다. 저체온증의 역설적 탈의(추우면 덥다고 느껴 옷을 벗는 현상)였을까, 아니면 누군가 강제로 벗긴 것일까?

부검 결과와 결론: 사고인가 타살인가?

몇 달 뒤 발표된 부검 결과는 대중을 허무하게 만들었다.

  1. 사인: 익사 (Drowning).
  2. 약물 반응: 마약이나 알코올 반응 없음. 강간이나 신체적 폭행 흔적도 없음.
  3. 최종 결론: 조울증(양극성 장애) 환자의 우발적 익사 사고.

엘리사 램은 평소 조울증을 앓고 있었고, 처방받은 약을 제대로 복용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제기됐다. 경찰은 그녀가 망상 증세(엘리베이터에서의 이상 행동)를 보이다가 옥상으로 올라갔고, 누구에게 쫓긴다고 착각해 물탱크를 피신처로 삼아 숨어들었다가 빠져나오지 못하고 죽었다고 결론지었다.

하지만 많은 이들은 여전히 납득하지 못했다. “정신병 발작이 일어났다고 해서 굳이 그 높은 물탱크에 기어 올라가 뚜껑을 열고 들어간다는 게 말이 되는가?” “CCTV 영상의 1분가량은 왜 편집되었는가?” “경찰견은 왜 옥상에서 그녀의 냄새를 맡지 못했는가?”

에필로그: 진실은 물 속에 잠들다

사건 이후 엘리사 램의 부모는 호텔 측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지만 기각되었다. 호텔이 예측 불가능한 사고까지 대비할 의무는 없다는 판결이었다.

이 사건은 현대 사회에서 CCTV가 인간의 마지막 순간을 기록했지만, 그 기록이 오히려 진실을 더 모호하게 만든 대표적인 사례로 남았다. 그녀가 엘리베이터 밖에서 본 것은 무엇이었을까? 호텔 복도의 어둠이었을까, 아니면 자신의 마음속에서 만들어낸 공포였을까.

세실 호텔은 이후 이름을 ‘스테이 온 메인(Stay on Main)’으로 바꾸며 이미지 세탁을 시도했지만, 여전히 사람들은 그곳을 ‘엘리사 램이 죽은 곳’으로 기억한다. 지금도 유튜브에는 그날의 엘리베이터 영상이 떠돌며, 보는 이들에게 소름 끼치는 공포를 선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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