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세 유럽을 휩쓴 ‘좀비’ 바이러스? 400명이 춤추다 심장이 터져 죽었다
좀비 바이러스의 시작, 음악 없는 춤판
1518년 7월의 어느 무더운 날, 신성 로마 제국(현재의 프랑스)의 도시 스트라스부르. 좁은 골목길에 한 여성이 나타났다. 그녀의 이름은 프라우 트로피아(Frau Troffea).
그녀는 갑자기 거리 한복판에서 춤을 추기 시작했다. 음악도, 반주도 없었다. 그녀의 표정은 즐거워 보이지 않았고, 오히려 고통스러워 보였다. 남편이 말려보고, 이웃들이 말을 걸어도 그녀는 멈추지 않았다. 밤이 되고, 새벽이 와도 그녀의 다리는 쉴 새 없이 움직였다.
사람들이 미쳤다고 손가락질하던 그때, 공포스러운 일이 벌어졌다. 구경하던 이웃 중 한 명이 홀린 듯 그녀 옆에서 춤을 추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또 한 명, 또 한 명.
일주일 만에 34명이 합류했고, 한 달 뒤에는 무려 400명의 남녀노소가 광장에 모여 미친 듯이 몸을 흔들고 있었다. 이것은 축제가 아니었다. 죽음의 무도회였다.

뼈가 부러지고 심장이 터질 때까지
이 기이한 현상은 ‘춤추는 전염병(Dancing Plague)’이라 불렸다. 현장의 모습은 지옥도와 다름없었다.
- 고통스러운 비명
참가자들은 춤을 추면서도 “제발 멈추게 해줘!”, “살려줘!”라고 비명을 질렀다. 그들의 의지는 멈추고 싶었지만, 몸이 말을 듣지 않는 듯했다.
- 신체 훼손
신발은 진작에 찢겨 나갔고, 맨발은 피투성이가 되어 뼈가 드러났다. 갈비뼈가 부러져도, 탈진해 쓰러져도, 잠시 뒤 다시 일어나 좀비처럼 춤을 췄다.
결국 사람들은 하루에 15명씩 픽픽 쓰러져 죽어 나갔다. 사인은 대부분 심장마비, 뇌졸중, 그리고 극심한 탈진이었다.
의사들의 최악의 오진: “더 춤추게 하라”
사태가 심각해지자 시 의회는 당대 최고의 의사들을 소집했다. 그들이 내린 진단은 황당하게도 “과열된 피(Hot Blood)”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체내의 뜨거운 피가 뇌를 자극했으니, 춤을 더 춰서 땀으로 열기를 배출해야 낫는다는 논리였다.
시 의회는 이 처방을 받아들여 기름을 붓는 실수를 저질렀다.
- 광장에 거대한 목조 무대를 설치했다.
- 피리 부는 사나이와 전문 악사들을 고용해 24시간 음악을 연주하게 했다.
- “마음껏 춤추라”며 판을 깔아준 것이다.
결과는 참혹했다. 음악 소리를 듣고 구경 나온 멀쩡한 시민들까지 집단 최면에 걸린 듯 무대로 뛰어들었다. 전염병은 걷잡을 수 없이 퍼져 나갔다. 결국 당국은 뒤늦게 무대를 철거하고 춤추는 자들을 강제로 마차에 태워 산속의 성소(성 비투스 성당)로 격리하고 나서야 사태가 진정되었다.
원인은 무엇인가? (가설들)
500년이 지난 지금도 과학자들은 이 사건의 명확한 원인을 규명하지 못했다.
가설 1: 맥각 중독 (Ergotism)
당시 주식이었던 호밀빵에 핀 곰팡이(맥각균)를 먹고 중독되었다는 설이다. 맥각균은 LSD(마약)와 유사한 환각 성분을 가지고 있어 경련과 망상을 일으킨다. (하지만 맥각 중독은 혈류를 차단해 팔다리를 괴사시키므로, 격렬한 춤을 추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반론이 있다.)
가설 2: 성 비투스의 저주 (St. Vitus Dance)
당시 사람들은 ‘성 비투스’라는 성인을 모욕하면 그가 저주를 내려 춤을 추게 만든다고 믿었다. 종교적 공포가 만들어낸 현상이라는 것이다.
가설 3: 집단 심인성 질환 (Mass Hysteria)
가장 유력 현대 심리학계의 정설이다. 1518년은 흉년, 기근, 천연두, 매독이 창궐하던 절망적인 시기였다. 극한의 스트레스와 공포에 시달리던 사람들이, 프라우 트로피아의 발작을 보고 집단적인 트랜스(Trance) 상태에 빠졌다는 것이다. 마치 사이비 종교 집회에서 한 명이 쓰러지면 줄줄이 쓰러지는 것과 같은 원리다. 즉, 마음의 병이 몸을 지배한 것이다.
춤 바이러스, 역사는 반복된다
놀랍게도 이런 현상은 1518년이 유일하지 않다.
1237년 독일 에르푸르트에서는 아이들이 춤을 추며 옆 마을까지 20km를 걸어갔다. (피리 부는 사나이 전설의 모티브)
1374년 라인강 유역에서는 수천 명의 사람들이 고통 속에 춤을 췄다.
1962년 탄자니아에서도 한 학교에서 시작된 ‘웃음 전염병’이 인근 마을로 퍼져 1,000명이 넘는 사람들이 18개월 동안 멈추지 않고 웃었다.
결론: 인간의 뇌는 시한폭탄?
1518년의 춤추는 전염병은 바이러스나 세균이 아니라, ‘공포’와 ‘믿음’이 인간을 어디까지 망가뜨릴 수 있는지 보여주는 섬뜩한 사례다.
당시 그들은 춤을 추고 싶어서 춘 것이 아니었다. 그들의 뇌가, 그들의 공포가 멈추지 말라고 명령했기 때문이다.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도 극심한 스트레스 상황에서 과연 안전할까? 어쩌면 오늘날의 ‘SNS 챌린지’나 맹목적인 유행도 21세기의 춤추는 전염병일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