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왕조 4편, 4번째 국왕인 세종에 대해 알아보는 시간입니다. 세종대왕으로 불리는 4대 국왕은 우리나라 국민들에게 가장 존경 받는 분 중 하나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만원 권 지폐에도 있는 분이니까요. 31년 동안의 긴 시간 동안 조선을 통치하며 한국사에 여러 왕중에서도 광개토대왕과 더불어 대왕이라는 호칭으로 불리는 왕인데요. 오늘 세종대왕의 업적과 일대기를 한 번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조선 4대 국왕 세종
세종대왕은 누구일까?
세종은 조선의 4대 국왕으로 1397년 태어났습니다. 31년 동안이라는 기간 동안 왕의 자리를 지켰으며 수많은 업적을 남겼고 조선을 대표하는 왕 중 하나입니다. 이방원의 6남으로 태어났으며 어릴적부터 총명함을 따라올 자가 없었다고 해요. 독서광으로 소문난 만큼 책을 항상 가까이 했으며 미술, 음악 등 다양한 부분에서 두각을 나타내었던 다재다능한 사람이었습니다.
태조 이방원이 왕자의 난으로 왕위에 올랐기에 장자 계승을 원칙으로 하려 했으나, 장자였던 양녕대군이 왕의 그릇을 보여주지 못했기 때문에 장자 계승을 포기했는데요. 그 결과 최고의 성군이 등장했습니다. 태조가 왕위에서 물러난 이후에도 후견인 역할을 제대로 해주었는데요. 세종이 성군으로 발돋움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지원군은 바로 태조였다고 생각이 드네요. 그리고 태조가 왕권 강화를 해두지 않았다면 오늘날의 세종대왕은 없었을 수도 있습니다.
세종대왕의 재위 기간과 시작
세종대왕의 재위 기간은 총 31년입니다. 역대 왕들 중에서도 재위 기간이 긴 편에 속하는데요. 이런 길었던 시간 동안 세종은 엄청난 업적들을 남기게 됩니다.
당시 충녕대군이었던 세종이 책봉되고 난 뒤에도 태종은 수시로 왕권을 강화하기 위해서 노력했는데요. 외척을 철저하게 멀리하고 죽기 직전까지 실권을 쥐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왕권 강화를 통해 세종도 자연스럽게 국왕의 권력을 잡을 수 있었고 태종이 죽은 뒤에는 태종의 구신들을 몰아내고 세종의 세력들로 조정을 채웠습니다. 세종 9년에는 황희를 좌의정, 맹사성을 우의정으로 삼으며 본격적으로 성군으로의 정치를 펼쳐나가게 됩니다.
세종대왕의 업적
세종대왕은 정말 다방면에서 엄청나게 많은 업적을 남긴 왕입니다.
농사직설
세종 시대의 경작을 할 수 있었던 면적은 150만 ~ 170만 헥타르라고 합니다. 이 수치는 조선 시대를 통틀어도 뛰어넘지 못한 수치였다고 하는데요. 실제로 조선 초기였기 때문에 다양한 농업 개혁과 방법들이 부족한 상황에서도 좋은 생산량을 보이고 있는데요. 조선 풍토에 맞는 농서를 편찬한 것도 큰 힘이 되었다고 평가 받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방법을 편찬한 책이 바로 농사직설 입니다. 농사직설 편찬 이외에도 세종은 정부의 호적과 세수 파악을 제대로 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데요. 수확량이 저렇게 좋았던 이유는 숨겨 놓았던 토지나 지방에 있는 토지들을 잘 파악했던 이유로도 보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잘 파악을 해야 정부에서 세수를 증가시킬 수 있었기 때문이에요.
대마도 정벌
조선 초기에는 일본과 교류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지속적으로 왜구가 바다를 넘어와 괴롭히는 경우가 많아졌는데요. 세종은 이종무 장군을 필두로 왜구를 소탕하고 대마도를 정벌하기도 했습니다.
4군 6진 개척
세종대왕 시절 바다로는 왜구가 북으로는 여진족과의 갈등이 있었습니다. 여기서 세종은 4군 6진을 개척하게 되는데요. 여진족을 북쪽으로 몰아내고 압록강 지역에 4군을, 두만강 지역에 6진을 설치하며 영토를 확장하고 여진족을 몰아냈습니다.
집현전
너무나 유명한 집현전이죠. 조선 최고의 학자들이 다녀간 학문 연구 기간입니다. 집현전 학자들은 여러가지 연구를 진행하면서 조선의 부흥을 위해 도왔는데요. 유교와 관련된 여러가지 연구를 하였고, 활자를 만드는 일에도 크게 도움이 되었습니다. 정책과 학문을 지속적으로 연구하고 국왕의 자문기구를 설립한 것도 큰 업적 중 하나입니다.
궁중음악 정리
당시 조선 시대의 음악은 향악, 당악, 아악으로 구분되었다고 하는데요. 우리나라 전통 음악이었떤 당악과 달리 제사 때 진행되는 아악은 중국의 음악이었습니다. 이에 세종은 조선의 아악으로 다시 만들었고 중국의 음악을 버리고 조선의 음악으로만 궁중 음악을 재편했습니다.
과학 기술의 발전
장영실과 세종의 일화는 너무나 유명하죠. 세종대왕 시절에 과학 분야에서도 큰 발전을 하게 되는데요. 대표적으로 유명한 것이 혼천의, 간의, 양부일구, 자격루 등의 기구를 만들었습니다.
천체를 관측하는 혼천의는 물론이고 시간을 측정할 수 있는 앙부일구(해시계), 자격루(물시계)도 발명하여 시간의 개념을 바로잡았습니다. 게다가 농사가 가장 중요했던 옛날 시기에 강수량을 측정할 수 있는 측우기도 발명했는데요. 측우기는 세계 최초로 강우량을 측정하는 기구이기도 합니다.
훈민정음 반포
가장 중요한 훈민정음이 드디어 나왔습니다. 세종과 집현전 학자들이 만들어낸 이 훈민정음은 백성을 가르치는 바른 소리라는 뜻이 담겨있다고 하는데요. 중국의 한자가 어렵과 사용하기 불편한 것에서 시작하여 일반 백성들도 쉽게 배우고 사용할 수 있는 새로운 언어를 만들어냈습니다. 우리나라의 한글이 지금까지도 이어져 올 수 있었던 이유가 바로 이 훈민정음입니다.
앞으로도 한글의 위대함은 갈수록 평이 높아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역사와 지도 편찬
세종대왕은 또한 고려의 역사를 정리한 고려사를 편찬하였으며 전국의 지도인 팔도도를 만들기도 하였습니다.
무기개발
위로는 여진족이 아래로는 왜구들이 있었던 시기이기 때문에 군사적으로도 굉장히 중요했던 시기입니다. 이 당시 세종은 총통, 신기전, 화차를 비롯한 각종 화약 무기 대대적 개발하고 개량하여 군사력에도 힘을 쏟았습니다.
오늘의 리뷰
사실 오늘 알아본 내용도 극히 일부분이고 업적 하나만 자세히 알아보려 해도 양이 엄청날텐데요. 그만큼 세종대왕이 왜 성군으로 불리었고 역대 최고의 왕 중 한명으로 뽑히는 지 알 수 있었던 시간이었습니다. 괜히 대왕이라는 칭호를 받으신 것이 아니에요.
다음에도 기회가 되면 세종대왕님의 업적을 하나씩 자세히 알아보는 시간도 가져보도록 하겠습니다. 아직도 초등학교 시절에 가장 존경하는 사람이 누구야 라고 물어보면 주저 없이 세종대왕님이요! 라고 대답했던 일들이 기억나네요. 여러분들은 어떠신가요?